그래서 숲길 너머엔 책 내음이 흐른다...새한서점

그래서 숲길 너머엔 책 내음이 흐른다...새한서점


새한서점 전경 ⓒ새한서점ⓒ새한서점

숲길 막다른 곳에 찾아든 손때 묻은 책 13만 권

“이 많은 책을 어떻게 다 모으신 거예요?”
“책은 여기까지 어떻게 옮기신 거예요?”

책방을 마주한 손님들이 신기함 가득한 눈동자로 묻는 단골 질문입니다.

새한서점에 오기 위해서는 하루 일곱 대만 다니는 버스를 타야 합니다. 정류장에 내려서도 30분을 걸어야 하지요. 차를 타고 오신다고 해도 꼭 걸어야만 합니다. 숲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 시골입니다.
그러다 보니 앞선 질문들이 계속 나올 만도 하지요. 가끔 ‘숲속의 서점’이라는 테마에 맞게 책방을 꾸몄다고 아시는 분도 꽤 계세요. 하지만 제가 손님들께 해드리는 답은 좀 싱겁습니다. “저희 서점은 꽤 오래된 헌책방이에요. 보유하고 있는 책도 많고요. 도시에서 버티기가 힘들어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처음에는 사용하지 않는 폐교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렇지만 그곳에서도 임대료를 감당하기 여의치 않아 이렇게 외진 숲속까지 흘러왔습니다.” 덤덤한 목소리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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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안 가득 쌓인 헌책들 ⓒ새한서점

사실 정말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래서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저도 주인장님도 감성적으로 말하는 편은 아니라서요. 책방 손님들은 좀 더 특별하고 재밌는 사연을 기대하는 것 같지만요.

다행인 건, 이내 사람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랜 세월을 버텨오면서 손때 묻은 헌책들은 저마다의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헌책방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노부부, 할아버지와 손녀, 젊은 연인들, 친구들과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이렇게 추억 위에는 새로운 추억이 쌓입니다.

“뽀얗게 몇 겹이나 쌓인 묵은 먼지들을 겁내지 않을 수 있다면 보물 같은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방명록 중에서-
서점의 일상

책이 가득 쌓인 서점 내부 ⓒ새한서점

월, 수, 금 오전은 책을 찾느라 분주합니다. 온라인 주문이 들어온 책을 발송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워낙 많은 책이 있다 보니, 분류해놓았음에도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두세 번씩 들여다보아도 안 보이는 책들은 찾는 데 한 시간씩 걸리기도 합니다. 이게 아주 흔한 일입니다. 큰 규모의 헌책방을 하는 주인장님들이라면 공감하실 거예요.

그 외에 따로 정해진 일과는 없습니다. 책방 서고가 약 200평 정도 되는데, 웬만한 알라딘 매장보다 크고 책도 더 많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이 거의 저 혼자이다 보니 해야 할 일이 항상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일과를 정하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 유동적으로 합니다. 현재는 책 등록하는 시간을 줄여 책방을 찾는 손님들을 위한 서고 환경 개선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겨울이면 길 위에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이 중요한 일과가 됩니다. ⓒ새한서점

아, 겨울이면 새로운 일과가 생깁니다. 화목난방을 위해 장작을 준비하고, 눈이 쌓이는 날이면 길을 쓸어 놓습니다. 책방까지 들어오는 길에 눈이 쌓이면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전에 눈을 쓰고 오후에 나무를 하면 하루가 금세 지나갑니다.

자연 속에 있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정화조가 얼 때도 있고,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서고로 물이 들이닥치기도 합니다. 신기하고 재밌는 일도 있습니다. 서고에 박쥐가 들어와서 천장에 매달린 적도 있죠. 해마다 벌집이 달리고 딱새들이 책 위에 새집을 짓고, 다람쥐가 돌아다니는 광경은 이미 익숙합니다. 서고에 문이 없다 보니 자연과의 경계도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진의 이면에 있는 헌책방, 그리고 책방 매니저

2017년 설 연휴, 하루 동안 120명 정도의 손님이 책방을 찾아주신 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책방에서 팔린 전부는 헌책 6권에 불과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헌책방 운영의 현실입니다. 방송에 다수 출연하고 영화 촬영지로 알려졌다고 하여 책이 많이 팔리지는 않습니다.

저는 새한서점 매니저 이승준입니다. 아버지께서 오랫동안 운영해온 헌책방을 살리기 위해 단양으로 내려온 ‘책방 아들’이기도 합니다. 저는 스포츠마케터로 일해 왔습니다. 마케팅에 관심이 많고, 관련된 일을 좋아합니다.

새한서저 매니저 이승준씨 ⓒ새한서점ⓒ새한서점

저는 책이 좋아서 책방을 운영하시는 분들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책을 더 많이 읽어 온 사람도, 책에 대해서 더 잘 아는 사람도 분명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제가 이곳, 시골의 헌책방까지 오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 아버지 세대의 헌책방 주인장님들은 헌책을 파는 것만으로도 서점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책이 귀하고,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책을 대체할 만한 다양한 콘텐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더는 헌책 판매로 서점을 운영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새한서점도 그렇습니다. 다만, 버티다 보니 시골에 안착하게 되었고 13만 권에 달하는 책을 40년간 유지하려다 보니 그동안 쌓인 빚도 많죠. 아마 다른 헌책방들도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버티고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운영되고 있는 헌책방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여전히 현실과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고요.

서점을 찾은 손님들 ⓒ새한서점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새한서점을 제가 직접 브랜딩해보고 싶었습니다. 가장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자, 비교적 젊은 제가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새한서점만이 줄 수 있는 장소의 특별한 매력과 오래된 헌책이 책 이상의 문화적 가치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은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헌책을 파는 서점’에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제공하는 특별한 문화공간’으로 책방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작은 노력을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가치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은 참 즐겁습니다. 물론 수익으로 연결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중요한 숙제입니다.

책방 매니저를 맡은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했고 꽤 많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참 재밌는 것은요,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좋은 사람들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사람들을 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참 신기합니다. 마케팅 공부를 현장에서 계속 배우는 기분입니다.

숲속의 문화산책

새한서점에서 진행된 공연 ⓒ새한서점

작년부터 <숲속의 문화산책>이란 테마로 문화행사를 계속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대학로 연극인들의 재능기부로 시작된 희곡공연부터 버스킹, 마술공연, 프리마켓, 시 낭송, 플롯 공연 등이 있었죠.

아무래도 혼자서 기획하고, 섭외하고, 진행하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아요. 대부분 재능기부의 형태지만 제 사비를 털어 교통비와 숙박비를 드리고 부탁할 때도 있습니다. 아직 책방 운영이 활성화된 편은 아니라 솔직히 좀 부담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숲속의 문화산책>은 계속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것은 지역에 기여하는 저만의 방식이에요. 지역주민들과 방문객들이 함께 참여하고 즐기며 소통할 수 있는 문화행사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이런 저의 마음을 잘 모를 거예요. 그냥 책방 홍보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죠. 그렇지만 분명한 건, 행사하는 날 책방 매출은 더 형편없다는 것...

다양한 콜라보 아이템을 만날 수 있다. ⓒ새한서점지역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만든 수제 펜과 도마, 노트 등 콜라보 아이템 ⓒ새한서점

가까운 지역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특별한 아이템을 기획하고 제작하기도 합니다. 수제노트, 수제 펜, 수제 샤프, 수제 도마, 수제 캔들, 자작나무 시계, 에코백, 메모 패드, 책갈피, 시 달력 등을 만들고 있어요.
서점은 콜라보 작업을 계속해서 확장하고 있는데요, 손님 중 책보다는 굿즈 기념품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꽤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수제 노트와 나무 샤프, 펜이 인기가 많은 건 역시 책방이라 그런가 봐요. 책은 안 사는데 책갈피는 많이 사가는 재밌는 상황도 종종 있습니다.

곧, 단양 출신의 김지원 디자이너의 타이포그래피 <책과 숲> 디자인을 활용한 도자기 머그잔이 곧 출시될 예정입니다. 오는 3월 1일에는 단양에 있는 ‘카페, 단’과 함께 새한서점 팝업스토어도 진행할 예정이에요.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일어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며, 현명한 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그 인연을 살려낸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일어난다.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 사람과의 인연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인연으로 엮여 있다. - 피천득 《인연》 중에서

서점을 방문한 손님이 방명록에 남겨주신 글입니다. 제가 군 생활을 하며 읽었던, 좋아하는 책이었는데도 한참을 잊고 있었죠. 나중에 이 글을 보는데 마치 잊어버리고 있던 비상금을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책방 일을 시작하니 스치는 인연들을 참 많이 만납니다. 제가 원하건 원치 않건 책방 일을 하는 사람에겐 운명인 거죠.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스치는 인연들과 만남도, 그들의 이야기도 저는 좋습니다.

손님이 남겨주신 방명록 ⓒ새한서점

얼마 전에는 설 연휴를 맞아 장년층 부부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제게 쇼핑백을 건네셨어요. 저는 아버지 지인이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오신 분들이더라고요. 저희 책방에 너무 오고 싶으셨다던 그분들의 쇼핑백 안에는 과일과 조기, 나물, 그리고 동시집 한 권이 담겨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했죠.

게다가 동시집은 아주머니께서 직접 쓰신 책이었습니다. 진해에서 북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하신다는 두 분은, 책도 직접 내시고 소장하고 계신 책들도 많으면서 저희 서고를 굉장히 좋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동화책을 많이 사 가셨어요.

시집에서 발견한 동시 ⓒ새한서점

그분들이 가져오신 동시집을 읽어보았습니다. 곧 봄을 앞둔 지금, 너무 좋은 시를 한 편 발견했습니다.

새한서점을 사랑하는 방법
‘인생 샷’ 보다는 ‘인생 책’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영화 <내부자들>에 서점이 나온 이후로, 일부러 들러주시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매일 꽤 많은 분이 찾아오시니 감사하면서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책을 단순한 소품으로, 서점을 출사 장소 정도로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어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서점 입구에는 안내 사항이 적혀 있다. ⓒ새한서점

저희 서점은 방송 촬영지나 관광지 이전에 책을 파는 장소입니다. 도시에 있는 서점과 이용 방식도 다릅니다. 이곳에서는 손님이 책을 제자리에 꽂지 않았을 때 다시 정리할 인력이 부족합니다. 서고 안에서 카메라 촬영에 집중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 흔적은 꼭 남기 마련입니다.

책방 문화 에티켓을 지켜주세요. 당부드립니다. 아이들이 서고에서 뛰거나 떠들지 않도록 주의를 부탁드려요. 그리고 서고를 둘러보시면서 가끔 정리되지 못한 책을 보신다면, 방문객들이 함께 정리도 해줄 수 있는 책방 문화가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아! 그리고 책방을 오시면 말없이 훅 가시지 말고 “잘 보고 갑니다!”라는 인사도 좀 해주세요.
서점만 훌쩍 둘러보고 가시는 분들이 많아지니, 너무 정이 없는 것 같아 좀 섭섭합니다.



2018년 2월 22일,

새한서점 매니저 이승준 씀

새한서점
1979년 문을 연 새한서점은 2002년 단양 지금의 자리로 이사 왔다. 올해 40주년을 맞는 오래된 서점으로 각종 영화 촬영 장소가 되기도 했다. 보유하고 있는 서적이 12만 권에 이르며 인터넷을 통해 주문할 수도 있다. 모든 종류의 책을 취급하지만 대학교재와 전문서적, 원서, 논문 자료 등을 주로 보유하고 있다.
Mon-Fri 09:00-19:00 | 010-9019-8443
www.shbook.co.kr
www.facebook.com/shbookcokr

The Neighborhood Bookshop Map Index

안녕하세요, 오늘의 동네서점

퍼니플랜 외 15곳의 동네서점 운영자와 함께 씀 | 로컬앤드+퍼니플랜 펴냄 | 128 x 174mm 총천연색 | 값 10,000원 | 2019년 11월 11일 발행 예정으로, 발행 시 최종 표지 그림과 자세한 정보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오늘의 동네서점은 안녕할까요?
#오늘의동네서점2

이 책은 2017년 1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약 30개월간 1년 이상 이웃과 소통하며 운영해 온 동네서점을 대상으로 기고받아 이메일 뉴스레터로 발행한 글을 묶어 만들었습니다. 또한 총 약 4년간 이용자 제보를 받아 수집한 동네서점지도 인덱스의 독립서점을 20개의 취향 태그로 분류해 수록했습니다. 이 책의 판매 수익금은 동네서점지도 운영에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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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나볼까, 〈여행자의 동네서점〉으로 지난 해 9월 초판 발간 후 1년이 지났습니다. 신촌 1개의 새 코스를 추가하고, 서울의 동네서점 여행 코스 7개를 만들었어요. 이번 주말에는 책방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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