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4 | 문래동 예술촌의 동네서점 여행지도

 동네4 | 문래동 예술촌의 동네서점 여행지도

동네4 | 문래동 예술촌의 동네서점 여행지도

책방으로 떠나는 도시 속 착한 여행, 「여행자의 동네서점」
여행자의 시선으로 동네서점이라는 작은 점과 점을 6개의 선으로 엮어 서울의 동네서점 여행 코스를 만들었습니다. 서점은 도시 여행자의 팍팍한 삶에 휴식과 영감을 주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후원금은 「여행자의 동네서점」 지도와 책자 제작에 쓰입니다.
이 6개의 선은 책·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6일간의 여행 코스로서뿐 아니라, 데이트 코스와 휴일 산책길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친구/연인과 함께 책방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


문래동은 일제 시대에 방직 공장이 많았다. 그리고, 광복 후 문익점의 목화 전래로부터 이름을 따 문래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철강공장, 철제 상이 밀집하게 되었다.

철강 산업의 메카였던 문래동이 어떻게 현재 문래 예술촌이 된 것일까.
80년대 후반과 90년 초반의 문래동은 국내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각했던 지역이었다. 이 시기와 맞물려 서울시는 철강 판매 상가를 외곽으로 이전시키려 했고, 이후 문래동의 철강 산업은 점점 쇠퇴하며 빈자리가 늘어갔다.

저렴한 작업 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이 빈 곳을 메우기 시작하며 지금의 문래 예술촌이 형성되었다.

현재, 문래동에는 100여 개 작업실과 약 200명의 예술가가 활동 중이다. 하지만 재개발이라는 이슈가 문래동 역시 달구면서 예술가의 활동 영역이 줄어들고 있다. 문래동이 최근의 홍대 앞과 같은 지역문화 예술인들의 이탈현상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 여행을 시작했다.

문래동의 동네서점 여행지도 ⓒFunnyplan

청색종이 Blue Paper

날것의 느낌, 문래동
문래동은 문래 근린공원으로부터 문래동 우체국 방향의 도림로 128길을 기준으로 높은 건물과 낮은 건물 구역으로 나뉜다. 이번 여행은 낮은 건물 구역과 문래동에 올해 초 새로 생긴 동네서점에 들러볼 작정이다.

문래역 앞 이정표와 문래 창작촌 인포메이션

양남 사거리에서 문래동 우체국 뒤편으로 가는 오밀조밀한 골목길에 벽화가 보였다. 어떤 벽화는 어릴 적 책상의 낙서 같았다. 문래역 주변의 유명 건설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자리는 불과 이삼십 년 전엔 큰 규모의 방직 공장 단지였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골목과 골목 사이 일부 철강소와 금형 공작소만이 남아 쇳소리를 내고 있다. 몇몇 곳은 문을 닫았으며, 또 몇몇 곳은 음식점과 공방이 최근에 들어섰다.

깨진 시멘트 바닥과 타일, 바닥에 남은 녹물자국과 버려진 의자. 문래동은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었다.

계획된 길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골목이라 자유로운 방향과 넓이로 흩어지고 모이는 골목이 흥미롭다.

<청색종이> 가는 골목길<청색종이> 입구

이 문래동 골목에 시인이 운영하는 작은 동네서점 <청색종이>가 있다.
지하철 문래역에서 5분 거리다.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와 창작촌 표지판을 따라 약 200m 직진하여, 문래창작촌 인포메이션 부스를 지나가자. 언제나 손님이 가득 찬 '기사님 분식'이 보이고, 그 옆으로 좁고 구불 한 오르막 골목이 보인다. 잠깐 딴짓을 하면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좁은 골목이다.


천 권의 시집, 천 개의 세계
<청색종이>는 문래동의 다른 공장 2층에서 출판사로 먼저 시작하여 올해 1월 출판사 겸 동네서점으로 현재 자리로 옮겨 문을 열었다.

기존의 박공지붕을 살리고 높은 천장을 활용해 만든 2층 다락방은 출판사로, 1층은 내부 인테리어를 새롭게 하여 따뜻한 사랑방 같은 동네서점으로 재탄생했다.

<청색종이> 문 앞에 놓여 있는 시 한편다양한 서적이 진열되어 있는 <청색종이> 서가

시인이 운영하고 있어서일까. <청색종이>엔 유난히 ‘시(詩)’가 많다. 입구부터 누구나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예쁜 시 한 편이 꽂혀있다. 시인은 매주 수요일마다 직접 쓴 시를 인쇄해 배포한다.

한 사람이 온다
골목 앞집 오동나무의 느짓한 가지 사이
아직 잎사귀를 틔우지 않은 얼굴로
단 한 사람이
내게 오는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나이고 그는 그가 되려고
모르는 얼굴로 서로
마주하고 있다
책장 사이로 조금은 비켜 서 있다
한 사람이 있다 단 한 사람이
봄볕으로도 제비꽃으로도
오래된 시집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단 한사람이
- 《손님》, 김태형

<청색종이>의 천 권의 시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입구 맞은편에 정갈하게 자리 잡은 ‘천 권의 시집’이 보인다.

‘천 권의 시집’이라. 천 개의 세계가 모여 있는 아우라다.
한 권의 시집을 펼치면 그 하나의 세계가 나에게 다가올 것만 같은 기분이다.

시인 주인장
주인 없는 서점 앞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먼저 발견한 주인장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청색종이>의 주인장은 시인이다.
주인장 김태형 시인은 1992년 문단에 시로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겨울, <청색종이>에서 자신의 산문집 「하루 맑음」을 출간 했다. 현재도 책방을 운영하며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쓰고 있다.

나는 시가 어렵다. 어렵다는 생각이 든 후부터 즐겨 읽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 메마른 단어만 쏟아내는 나를 발견하게 될 때면 시집을 들추곤 한다. 김태형 시인의 시는 문래동에 오며 찾아 읽게 됐다. 그의 시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시는 ‘이루어진 말’이다.

들판은 눈이 있고 숲은 귀가 있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내게 가만히 고이더라
들판에선 눈이 되고 숲에선 귀가 되지 그게 나였으니까 그 말엔 내가 있으니까 곁이 있으니까 들판이 아니라 숲이 아니라 내가 있으니까
바라다보는 끝닿은 곳에 지평선이 한 줄 그어져 있으니 아무리 세상이 둥글어도 내게는 단 한 줄만 그어져 있으니 그곳으로 건너가는 눈빛은 참 멀어져야 했으니
나무 뒤에 나무들이 있어 그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고 가만히 양치류처럼 귀가 자라나고 바람에 실려 오는 것은 들을 수 없는 소식들 그럴수록 귀는 나무 뒤로 멀어지고 귀가 멀어서 들리는 것은 들리지 않는 것뿐
내가 되고 곁이 되고 이 세상이 되어서 오래된 말은 내일도 오래된 말이 되고 또 오래된 말이 되고
- 《이루어진 말》, 김태형

한편에 자리한 시인의 책들을 뒤적이는 사이, 시인은 따뜻한 민들레 차를 준비해주셨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자라났을지 모를 '민들레' 꽃이었다. 나는 책 냄새에 민들레 향기가 더해진 향긋한 시간을 선물 받았다.

향긋한 민들레 차와 오래된 타자기

헌책 냄새, 글자 냄새
<청색종이>에 시만 가득한 건 아니다. 시집 외에도 인문서, 예술서를 갖추고 있다. 들뢰즈, 칸트, 바슐라르의 미학, 철학 서적은 물론 국내 근대소설과 요즘 잘 나가는 산문집이나 수필까지 다양하다. 특히 흥미로운 건 헌책과 구하기 어려운 절판 도서 그리고, 초판본도 있었다.

초판본 시집과 소설책

천 권의 시집이 꽂혀있는 책장과 벽면 책꽂이 모두 절판 도서가 중간중간 보물처럼 꽂혀있었다. 이 책의 대부분은 주인장이 소장하고 있던 책이란다. 주인장이 소년 시절 용돈을 쪼개 산 책부터, 시인이 되고 난 후, 최근까지 수집하듯 전국을 뒤져 산 책도 있다.

소장하고 있던 책을 팔면 아깝지 않으세요?


처음 책방을 열 때 아내가 당신이 읽는 책은 재미없어서 아무도 안 살 거라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어떻게 다들 아는지, 좋은 책은 다 골라가더라고요.

헌책은 특유의 헌책 냄새가 있다. 새 책과는 다른 냄새다. 누군가의 손길이 묻어있는 냄새가 난다. 책 사이에 메모나 엽서가 끼워져 있다면 선물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취향과 시간이 남긴 냄새가 남아 있다는 것, 이것이 헌책의 매력이다. 꽂혀있는 책을 훑어보며 주인장의 취향을 살피었다.

시인의 취향이 묻어 있는 <청색종이> 서가

사람이 모이는 사람 냄새 나는 곳
<청색종이>에서는 다양한 인문학 강좌와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독서모임, 사진전, 글쓰기 강좌 그리고 영화 함께 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지 않아 열네 명 정도가 들어서면 꽉 찬다. 그래서, 더 따뜻한 공간이 된다. 최근에는 이명랑 소설가와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책방에서 문학하다>진행도 시작했다.

문래예술창작촌 철강소 옆에서
철강만큼 단단한 시를 짓다
시는 당신이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다

프로그램 안내 문구조차 한 편의 시 같은 이 작은 책방, 소탈하고 진심이 있는 동네서점 <청색종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카페 수다 Cafe Suda

여기 서점인가요 카페인가요
<청색종이>를 나와 문래역과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점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높은 책장과 한가득 책이 꽂힌 모습이 보였다.

‘이곳도 서점인가?’

간판이 잘 보이지 않아 커피와 음료를 파는 책방이라 생각했다. 차양에 가려 보이지 않던 간판 <카페 수다>를 뒤늦게 발견하고서야 카페인 것을 알았다. 아주 작은 테라스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입구에서 바라 본 <카페 수다>

카페 이름처럼 꼭 책과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 같았다. 책 안에서 텍스트가 쏟아져 나와 손님과 수다를 떠는 상상을 해보았다. 책의 냄새가 커피 내음과 섞여 있었다. 밖에서부터 눈길을 끌었던 4m가 넘는 높이 책장엔 인문·예술·문학서적 그리고 만화책까지 족히 삼사백 권은 되는 책이 꽂혀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자유롭게 꺼내 볼 수 있게 했다.

책이 가득 꽂힌 <카페 수다>의 키 높이 책장

<카페 수다>는 동화작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주인장이 2013년 여름 오픈했다.
주인장이 동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직접 인테리어를 한 공간은 꽤 독특했다. 입구 손잡이부터 기발했는데 다. 산업용 공구 모양을 본떠 만든 손잡이는 멍키 스패너처럼 보이기도 하도 파이프렌치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주변 고물상에서 가져온 소품을 재활용하여 만든 작품으로 실내 곳곳을 꾸몄다. 1.5층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손잡이도 배관 밸브를 활용했다. 마치 오두막집을 연상케 하는 주문대 앞에는 쉼 없이 허공을 유영하는 돌고래 한 마리가 있다. 하늘을 나는 돌고래라니.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였다.

다락방 올라가는 계단에서 바라 본 <카페 수다>

하늘을 나는 돌고래가 보이는 다락방
동화 속 집에는 언제나 다락방이 등장한다. 다락방에서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만화책을 온종일 보고, 오래된 장난감 상자를 끄집어내기도 하고, 때론 보물 지도가 숨어 있기도 하다.

<카페 수다> 다락방은 4인 테이블을 둔 공간과 한두 명만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작은 공간은 좌식 테이블이 놓여 있다. 꼭 작은 동굴 같기도 하고, 큰 고치 같기도 했다. 다른 손님들이 있어 살짝 부끄러웠지만,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아 보았다.

<카페 수다> 다락방에서 바라 본 하늘을 나는 돌고래<카페수다> 다락방의 귀여운 소품들

작은 동굴에 앉으니 작은 창으로 하늘을 나는 돌고래의 모습이 보였다.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커피 한 모금을 맛보았다. 신선한 맛이었다. 동티모르의 마을공동체에서 생산한 자연산 커피 생콩을 들여와 로스팅 한 것을 매일 아침 배송 받는다고 한다.

눈앞에서 아른아른 움직이는 돌고래를 보며 커피를 마시니,
잠시나마 동화책 속에 들어 온 기분이 들었다.

사진문화공간 아지트 Azit

사진의 모든 것 그리고 한 평 서점
<카페 수다> 책장 한편에 꽂혀 있던 안내서를 보고, 사진 문화공간 <아지트>라는 곳에 가보기로 했다. 철공소와 우쿨렐레 교습소 맞은편에 문래동다운 건물이 보였다.

2층 벽돌 건물 중앙에 좁은 계단이 있고, 계단 입구 위로 ‘Azit’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계단에 들어서니 오래된 건물 냄새가 났다. 나중에 주인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1967년도에 지어진 건물이란다. 그 시절의 건물들과 비교하면 깨끗한 편이지만, 오랜 시간의 냄새는 지울 수 없나 보다.  


<아지트> 갤러리와 작업실로 들어가는 문

사진가와 사진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아지트>는 지난 2년간 16회의 사진전을 개최했고, 7권의 책을 발간했다. 공간은 갤러리와 사진과 출판 작업을 하는 작업실로 구분되어 있다. 하얀 벽면의 갤러리와 노란색 벽면 작업실은 무심하게 뚫어놓은 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갤러리는 다음 대관 전시가 한창 준비 중이었다. 전시는 기획 전시와 대관 전시로 나뉜다. 대관 전시일 경우, 대관료는 완전히 무료이거나 약간의 운영비 정도만 받는다. 작가들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비용이 대관료다.

<아지트>는 많은 사진가가 좋은 사진을 많은 이들과 나누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렇게 프로 사진작가부터 아마추어 작가, 때로는 전혀 다른 분야 사람이 찍은 사진전까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지트>의 한 평 서점


몇 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그 중 표지부터 남다른 ‘faceholic the Asia'는 아시아를 여행하며 사람들의 표정을 담은 주인장의 사진집이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꾸밈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내 머릿속 걱정 따윈 그리 중요치 않게 느껴졌다.

<아지트>는 사진 강좌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데, 1대 1 맞춤형 수업은 물론 단체일 경우 출장 수업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수업 후에는 수강생의 사진을 엽서나 책으로 발간해주고, 전시까지 개최하게 도와주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를 돌보는 주인장과 갤러리에서 바라 본 작업실<아지트>에 살고 있는 흰냥이와 깜냥이

사진가 커플과 고양이 커플이 있는 곳

<아지트>엔 두 커플이 산다.

앞서 말한 사진가 커플과 고양이 커플이다. 안쓰러워 데려온 어린 길고양이, '흰냥이'와 '깜냥이'가 어른이 되어 어느새 커플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이 고양이 커플이 사진가 커플에게 여섯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안겨주었다.

길고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얌전한 걸음과 우아한 자태가 남다른 흰냥이와 깜냥이. 내가 작업실을 기웃거리니 어느새 내 발밑을 어슬렁거린다. <아지트>의 주인 행세를 하는 모양이다.

핸드폰으로 매일 고양이 커플을 촬영하고 있어요.

주인장 핸드폰에는 고양이 커플의 영상과 사진이 한가득 이었다.
아픈 새끼 길고양이를 데려와 보살폈지만, 결국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땅에 떨어져 있는 참새 새끼를 데려왔지만 역시 2주 만에 세상을 떠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두 주인장. 그래서 그 후에 만난 '흰냥이'와 '깜냥이'가 더 사랑스럽고 소중하다고 했다.

필름 카메라와 주인장의 사진집

사진가 주인장은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문래동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오래도록 문래동을 터 삼아 살아온 사람들 표정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작업실과 가게를 열며 동네가 새로워지고 있다지만, 문래동에서 태어나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동네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


SNS가 범람하고 사진을 찍고 찍히는 게 일상화 된 시대.
하지만, 이야기가 있는 사진은 특별한 힘이 있다. 사진 문화공간 <아지트>의 주인장들이 계속 사진을 찍고, 사진집을 만들고, 사진전을 여는 이유이다.

부비책방 Buvibooks

여행과 고양이와 시니어가 있는 <부비책방>
<아지트>에서 보통 걸음으로 이십오 분 정도 거리에 있는 <부비책방>은 여행 작가가 운영하는 작은 서점이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좋아해 이름을 <부비책방>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여행과 고양이와 시니어가 있습니다.

서점 소개 문구도 흥미로웠다.

사실 여행 작가가 여행서점을 운영하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고양이 여덞 마리를 키우는 <아지트> 주인장처럼 고양이는 마니아가 많은 동물이라 ‘주인장이 고양이를 좋아하는구나.’ 정도로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서점과 '시니어'가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했다.

<부비책방>은 신도림역에서는 3분 정도 걸리는 매우 가까운 거리다. 신도림 지하철역 광장을 지나 길을 건너면 <부비책방>이 있는 건물에 도착한다. <부비책방>은 독특하게도 일반 상점 건물이 아니라 높은 오피스텔 건물 21층에 있다. 로비에서 인터폰 벨을 누르고 들어가야 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는 없다.

두 평 남짓의 작은 서점 <부비책방>

따뜻한 홍차와 달콤한 마들렌
서점 개점 시간 동안에는 출입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도록  문고정받침으로 문이 고정되어 있다. 대부분의 동네서점은 작고 조용해 문을 확 열어젖히고 들어가기 힘들다. <부비책방>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왠지 모르는 사람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삐걱, 최대한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지금 맛있는 홍차를 끓이고 있어요.

주인장은 문을 열기까지 망설였던 내가 민망할 정도로 친근하게 반겨주었다.

홍차랑 마들렌 드시면서 편하게 책 보다 가세요.

<부비책방>은 두 평 남짓의 작은방 한 칸을 서점으로 꾸민 작은 책방이다.

거실은 출판사 사무실 겸 워크숍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예전의 주인장의 염리동 작업실과 다른 장소에 있던 워크숍 공간을 옮겨 하나로 합쳤다고 한다.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는 <부비책방> 서가


서점이라기보다는 깨끗이 정리된 서재처럼 보였다. 책의 종류와 가짓수도 내 서재보다 적었다. 하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니 작지만 꽤 재밌는 구석이 있었다. 책 종류가 많지는 않았지만, 정확한 책 큐레이션 덕에 취향이 독특한 타인의 서재를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부비책방> 서가에 놓인 여행책들

여행 고전, 여행 인문학 그리고 오래된 작가들의 여정이 있는 여행 수필과 고양이와 시니어를 소재로 한 드로잉 북, 소설, 잡지 등이 있었다.

그중 '여행'이 키워드인 책을 가장 많이 판매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 기행」, 「러시아 기행」같은 여행 고전과 독립출판물 「보통날의 여행」 등의 여행 수필, 슬로우 라이프 관련 책, 그리고 일본 여행과 관련된 책이 눈에 띄였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고양이’였다. 고양이 관련 책들과 소품이 많았다. 고양이 그림엽서, 일러스트 책, 고양이가 등장하는 소설, 고양이 관련 잡지 등이 오묘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주인장은 고양이는 고양이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반려동물을 대표하여 책과 소품을 구성해 두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시니어’ 즉, ‘시니어 라이프’다. 시니어 라이프 관련 책이 많은 이유는 시니어 세대가 <부비책방>과 함께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주인장의 마음이었다. 독립출판잡지 「할」과 「지글스」, 노처녀를 위한 잡지 「농」과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시니어 라이프 콘셉트에 딱 맞는 책들이 한편에 구성되어 있었다.



<부비책방>에서 바라 본 바깥풍경

나는 책꽂이에 놓여 있던 책 중 한 권을 골라 도심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창가 앞 소파에 앉았다. 한 손에는 홍차를, 무릎에는 책 한 권을, 입에는 부드러운 마들렌을 물고 조용한 봄날의 오후를 즐겼다.

작지만 알차다
내가 자리에 앉자 <부비책방>을 지키는 고양이가 나타났다. 바람에 불어 민들레 씨앗이 소리 없이 날아오듯, 내 발아래로 날아 들어왔다. 책을 펼치고, 홍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꿈쩍하지 않고 멀뚱히 나의 움직임을 관찰하더니 주인장의 목소리에 밖으로 총총 뛰어 나갔다.

<부비책방>에 살고 있는 고양이

고양이가 뛰어나간 이 작은 서점 밖 공간은 「보통날의 여행」 발행인인 주인장의 작업장이자 워크숍 공간이다.


<부비책방> 주인장이 쓴 여행책 '보통날의 여행'

<부비책방>에서는 여행작가 수업을 비롯하여 여행수필 쓰기, 북 바인딩, 여행 영어, 여행 일본어 등의 다양한 장르의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여행 준비에서부터 여행에서 돌아와 기억을 남기기까지 모든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여행자에게 딱 알맞은 프로그램들이다.

현재는 워크숍 참여를 위해 오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오롯이 서점만 찾는 손님은 매우 적다고 한다. 너무 작은 서점이라 사람들이 찾아오고 머물기 불편해서일까? 공유 서재처럼 혹은 동네 사랑방처럼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길 바래본다.


글/사진 구선아 · 일러스트 이예연
기획/제작 퍼니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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