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야 어땠는지 몰라도 내가 자란 시골 고향마을에서는 해가 넘어가면 마을 이장님 댁으로 모였다. 안방에는 어른들이 앉아 있었고, 마루에는 청년들이 자리 잡았고, 나 같은 코흘리개는 마당에서 안방을 기웃거렸다. 그렇게 텔레비전 시청의 자리 서열이 정해져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1970년대 중반은 그러니까 한 동네에 텔레비전 한 대 꼴이었다. 그래도 그 위력은 대단해서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면 말이 안되는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세상과 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오직 그것밖에 없어서 텔레비전은 지식 정보 습득의 원천이자 상상력의 보고였다.
교복입은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1980년대 초반은 좀 더 나아져서 한 집에 텔레비전 한 대꼴은 되었다. 그래도 빈부격차는 있어서 나처럼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 아이들은 만화가게에서 10원짜리 만화책을 보며 최불암 아저씨가 나오는 수사반장을 봐야했다.
아직도 그때 보았던 레슬링 선수 김일 아저씨의 박치기나, 전설의 고향에서 보았던 귀신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 걸 보면 쉽고 편하게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지금보다 영향력은 더 컸다. 그렇게 나의 생각이 한창 자라던 시절의 텔레비전은 힘이 셌다. 네모난 상자에 얼굴이 자주 보이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고, 대통령이 되었다. 바보 상자라고도 했지만 그 속에서 애국자라고 하면 애국자였고, 빨갱이라면 빨갱이였다.
1936년 영국 BBC가 인류 최초로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고, 20년이 지난 1956년 우리나라에서도 전파를 쏘기 시작해 이제 50년 가까이 된 시점에서 텔레비전은 그때만큼의 힘은 없는 것 같다. 세상과 통하는 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 집중하지 않아도, 그보다 더 많이, 더 편하게, 더 내 맘에 드는 방식으로 세상과 접하는 수단들이 많이 생겼다.
디지털이다.
디지털은 온갖 정보를 0과 1로 단순화 시켜 매스미디어의 권력을 단숨에 무력화시키고 있다. 정보의 생산, 가공, 유통을 소수의 권력자, 엘리트 집단에서 개인의 손으로 옮겨 놓고 있다.
얼마전 만난 중앙 일간지 기자의 말은 권력자 매스미디어의 뒤바뀐 현실을 잘 이야기해 주고 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과거사 이슈에 대해 인터넷에서 폭로되면 월간지나 주간지에서 받아쓰고 중앙일간지는 최종 확인만 해주고 있다는 한탄이었다. 정보를 취사, 선택하고 가치의 경중을 가리는 일에서 시작된 매스미디어의 막강 파워는 디지털이 만들고 있는 뉴미디어에 의해 금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가 만든 매스미디어는 권력을 한 곳에 집중하게 했다면 디지털이 만들고 있는 새로운 질서는 권력을 개인의 손에 쥐어 준다는 것이 가장 큰 핵심일 것이다. 정보를 취사, 선택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우리 자신에게 넘어왔다는 의미에서 매스미디어에 대별되는 개념으로 퍼스널미디어가 대두되고 있다.
얼짱, 폐인, 촛불시위, mp3폰, 탄핵, 방송과 통신의 융합, 디지털TV 등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문화 현상의 중심에는 디지털 기술이 있지만 디지털 기술의 정중앙에는 매스미디어의 ‘군중’이 있지 않고 오로지 한 ‘개인’이 자리잡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지 않고 나와 우리가 중심이 되어 세상을 통제하는 사회. 디지털이 그렇게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코흘리개 시절 흑백 브라운관의 추억을 간직하고 ‘매스미디어의 시대’를 살아온 나보다 화려한 모니터의 추억을 가지고 ‘퍼스널미디어의 시대’를 살게 될 내 아이들이 나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다만, 2004년 9월 오늘은 일단 ‘설레임’으로 말해두자.
조광현(디지털미디어리서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