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나고 싶을 때, 나는 그곳으로 간다@세 번의 겨울을 함께한 '썸원스페이지'/임현정
문득 떠나고 싶을 때, 나는 그곳으로 간다
@세 번의 겨울을 함께한 '썸원스페이지'/임현정
책방에서 1박 2일 어때? 이번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북스테이에서 하룻밤 머물며, 책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북스테이_책과함께머문하루
시작은 충동적이었다. 생일을 이틀 앞둔 밤, 나는 갑자기 이번 생일은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졌다. 평소 지인들의 생일은 물론 내 생일조차 잘 챙기지 않던 사람이 ‘혼자만의 여행’이라는 조금은 오글거리는 이벤트를 감행하려 하다니... 아마도 당시 내 안에 아무렇게나 쌓아둔 이런저런 감 정들을 돌아보고 싶었던 바람과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겨울을 오롯이 즐기고 싶었던 마음이 합심해 나를 떠민 듯하다.
자정이 넘어 시작한 검색을 통해 내가 원하는 조건 -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은, 나 같은 도보 여행자가 이곳저곳 둘러보기 좋은, 개별 화장실이 딸린 1인실이 있고 밤에 파티가 없는 조용한- 에 맞는 숙소를 찾아냈다. 그곳은 바로 춘천의 ‘썸원스페이지(Someone’s Page)’라는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였다. 처음 접해보는 북스테이가 조금 생소했지만,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을 확신하며 예약 버튼을 눌렀다.
[청춘], [춘천], 그리고 책
용산역에서 춘천역까지 ITX-청춘열차로 걸리는 시간은 약 1시간 15분. 비록 삶은 계란은 없었지만, 기차 여행의 기분도 살짝 맛볼 수 있고 몸도 고되지 않은 적당한 시간이다. 열차 이름에 적힌 ‘청춘’이라는 단어는 나홀로 여행에 대한 설렘을 더 고조시키는 듯하다. 종착역인 춘천역에 도착해 20분 정도 걸어가면 썸원스페이지를 발견할 수 있다.
썸원스페이지의 라운지, 책과 커피와 음악이 함께 하는 곳 ⓒ임현정
번화가도 관광지도 아닌, 강원도청 근처 조용한 동네에 자리한 썸원스페이지. 1층엔 투숙객들을 위한 라운지가 있는데, 북스테이답게 다양한 책이 비치되어 있고, 좋은 음악이 흐른다. 이곳에서 따듯한 커피나 차를 마실 수도, 그림을 그리거나 방명록을 끄적일 수도 있다. 라운지는 물론, 객실로 향하는 복도와 객실 내부까지 방문객이 남긴 제각각의 흔적들과 예쁜 소품들이 가득해 이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눈요기가 된다.
늦은 시간 숙소에 도착한 나는 편안한 인상의 지기님과 간단한 대화만을 나누고서 읽을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소설, 만화, 동화, 잡지 등 장르를 막론한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으니 누구나 맘에 드는 책 한 권쯤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춘천의 내 방’에서 마음껏 하는 독서
내가 묵은 방의 문 번호. 좋아하는 소설 ‘어린왕자’의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임현정
고작 하룻밤인데도 욕심을 부려 네 권이나 되는 책을 고른 뒤 방으로 들어왔다. 숙소 이름에 걸맞게 각 방의 문 앞에는 페이지 수와 책에서 발췌한 글귀가 적혀 있다. 사소한 부분까지 감성을 불어넣은 세심함에 감탄하며 방문을 여니, 마치 내 방에 온 듯 아늑하고 정갈한 공간이 나타났다.
‘책을 사는 것은 책을 읽을 시간까지 함께 사는 것’이라는 말을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책을 사지는 않았지만 2인실을 ‘1인 여행 할인 비용’으로 예약해 책 읽을 시간까지 샀으니, 이제 마음껏 그 시간을 누릴 차례. 휴대전화를 끄고 부드럽고도 탄탄한 침구에 몸을 누인 뒤, 챙겨온
책들을 읽어 내려갔다.
아늑한 독서의 밤 ⓒ임현정
만약 책을 읽다 조금 지루해진다면 침대 곁에 놓인 방명록을 펼쳐 보길 권한다. 숙소를 방문했던 이들이 남긴 페이지들엔 춘천 여행기부터 숙소에 대한 감상, 사랑하는 이에 대한 편지까지 여러 글과 그림들이 빼곡하다. 보다보면 흥미롭기도, 찡하기도 하다.
오래 머물고 싶은, 또다시 찾고 싶은 곳
다음날 아침 못 다 읽은 책들을 챙겨 라운지로 향했다. 보통의 여행에서는 서둘러 체크아웃을 하고 바깥 구경을 나서지만, 이곳에서는 책을 마저 읽거나 사진을 찍고 지기님과 대화도 나누며 여유롭게 머무르고 싶었다.
곱게 볕이 드는 라운지에서 ⓒ 임현정
아는 이 하나 없는 타지에서 이처럼 아무 계획 없이 무방비로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이었는데도 어쩐지 불안하지도, 다급하지도 않았다. 바깥은 차고 건조한데, 큰 창으로 스며드는 겨울 볕과 주문한 차의 훈김 덕인지 라운지는 참으로 안온했다.
나는 첫 숙박 이후 지금까지 이곳에서 두 번을 더 묵었다. 세 번 모두 추운 계절이었다. 그동안 춘천 곳곳에 점점이 흩어져있는 작은 명소들을 섭렵했고, 늘 찾는 식당도 생겼고, 내가 그린 그림으로 만든 엽서를 숙소에 남기기도 했다. 춘천이, 썸원스페이지가 곧 나의 겨울 별장인 것처럼. 은행나무 열매가 발길에 차이는 이맘때쯤이면 나는 벌써 달력을 보며 춘천행을 계획한다. 의암호의 잔잔한 수면을 닮은 숙소에서 올 한해도 독서와 함께 차분히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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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 | 북스테이, 책과 함께 머문 하루
박초롱, 김건숙 박초롱, 김건숙, 조현욱, 이상기, 임현정, 고미랑, 이보미, 유명숙, 김태리 기고 ㅣ오마이뉴스 책동네 기획 ✕ 퍼니플랜 펴냄
책방에서 1박 2일 어때?
이번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북스테이에서 하룻밤 머물며, 책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2017년 9월 1일부터 10월 13일까지, 약 6주간 오마이뉴스 책동네와 함께 ‘책과 함께 머문 하루’ 체험수기 공모를 진행했습니다. 우수상과 장려상을 받은 응모작 중 기사로 실린 글을 선별해 소개합니다. 이 책의 판매 수익은 동네서점지도 서비스 운영에 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