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로그 | 전자제품 말고 책 팔아요, 청계상가 책방 200/20

인터로그 | 전자제품 말고 책 팔아요, 청계상가 책방 200/20
책방으로 떠나는 도시 속 착한 여행, 「여행자의 동네서점」
여행자의 시선으로 동네서점이라는 작은 점과 점을 6개의 선으로 엮어 서울의 동네서점 여행 코스를 만들었습니다. 서점은 도시 여행자의 팍팍한 삶에 휴식과 영감을 주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후원금은 「여행자의 동네서점」 지도와 책자 제작에 쓰입니다.
이 6개의 선은 책·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6일간의 여행 코스로서뿐 아니라, 데이트 코스와 휴일 산책길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친구/연인과 함께 책방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
청계상가 책방 <200/20>
청계상가 1층의 다열 상가 앞
청계상가에 들어서다
서울의 도시재생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나 등장하는 이름, 세운상가.
국내 1호 주상복합단지이자, 산업화의 주춧돌이었던 곳. ‘세운상가에선 잠수함과 미사일도 만든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한때 산업을 좌지우지했었다.
세운상가라 하면 종묘와 청계천 사이에 있는 건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세운상가는 본래 세운상가가동,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풍전호텔, 신성상가, 진양상가 등 8개의 큰 건물을 총칭해서 말한다. 현재는 현대상가가 허물어지고 7개의 건물이 남아 있다.
서울시는 얼마 전, 세운상가 재생사업인 ‘다시 세운 프로젝트’ 1단계 도시재생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낙후되고 침체한 도심을 활성화 시키기 위해 광장을 조성하고, 세운상가에서 청계상가까지 공중 보행교를 구축하는 등 ‘다시 걷는 세운’의 보행 공간이 만들어질 계획이라고 한다.
세운상가라 부르는 건물은 여러 번 돌아본 적이 있었지만, 청계상가는 지나치기만 했었다. 지금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상가 안에 자리 잡은 소규모 동네서점 <200/20>도 들러볼 겸 청계상가로 출발했다.
청계상가 가열, 가열이면 나열, 다열도 있는 건가.
한 번도 상가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던 나는, 아파트 동처럼 여러 동 중 하나가 가열인가 싶어 어디로 가야 할지 멈칫했다.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는 인상 좋은 아저씨에게 가열이 어디인지 묻고 나서야 상가 정면 입구 계단에 올라섰다.
입구를 중심으로 건물 오른쪽이 가열, 그와 맞은편의 라인이 나열 그리고, 왼쪽이 다열 이런 식으로 상가 내부가 구성되어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 호수가 적힌 푯말을 보며 <200/20>을 찾았다.
공구와 오락기, 각종 디지털 제품의 소모품 파는 가게들 사이에 떡 하니 '이백에이십'이라고 적힌 책방 <200/20>의 입간판이 보였다.
전자제품 말고 책 팝니다
청계상가 책방 <200/20> 입구
전자제품 말고 책 팔아요
<200/20>의 주인장은 처음 대림상가에 있는 <300/20>에서 전시를 진행하며 이 동네를 들락거리게 되었고, 그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가진게 책밖에 없어 서점을 시작했다는 주인장.
서점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바로 작년 2월 청계상가 3층, 넓은 데크를 가진 이곳에 문을 열었다.
이 동네를 들락거린 지 1년 만의 일이었다. 주인장은 서점을 열고 1년은 물리적인 공간 구축에 온 힘을 쏟았다. 책장과 테이블을 만들고, 책이 잘 보이도록 공간을 꾸미고, 출판사와 작가를 접촉하며 책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도 책을 유통해본 적도 없어 처음엔 모든 게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땐 어느덧 책방 주인장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처음엔 두 명의 주인장이 협업하여 서점을 열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현재는 한 명의 주인장이 <200/20>을 지키고 있다.
<200/20>에서 출간한 독립출판물다양한 독립출판물과 무료 발간물이 꽂힌 <200/20> 진열대
서점의 모습을 갖춘 후에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공연과 전시도 하고, 이벤트도 꾸렸다. 협업의 결과로 '200/20'의 이름으로 독립출판물을 출간하기도 했다.
<200/20>은 공간에 딱 알맞을 만큼의 책이 갖춰져 있었다.
책장의 책들은 인문과 예술 서적이 많았다.
내가 관심있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책들이 많아 놀랐다.
어떻게 책을 고르세요?
작년에는 '시간과 공간' 올해는 '미디어'를 주제로 책을 골랐어요.
'시간과 공간' 주제의 책들이 꽂힌 서가
그리고 주인장이 말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제라니 ‘장소성’이 빠질 수 없었겠다. 텍스트가 시각화된 것이 영화이고, 시각적인 경험을 텍스트로 옮긴 게 책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소설을 영화화하는 건 일반적이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주인장이 가지고 있던 책에 작은 스티커를 붙여 판매하고 있었고, 독립출판물은 주제별로 분류해 책 테이블과 별도 책장을 두어 전시하고 있었다.
<200/20> 이 모습 이대로
책이 좋고, 이 작은 서점이 너무 좋다는 <200/20> 주인장
이 모습 이대로
주인장은 요즘 고민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주인장은 다시 입을 떼었다.
책이 좋고, 텍스트로 보여지는 것이 좋고, 이 작은 서점이 너무 좋다는 주인장.
하지만, 본인이 잘하고 있는지, 잘할 수 있을지, 이곳에서 계속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오래도록 여기에 남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마음으로 주인장을 응원했다. 오래도록 청계상가에 남아, 은은한 책 냄새를 풍겨주길 바란다.
<200/200> 서점 내부에서 유리창으로 바라 본 앞마당
<200/20> 앞 데크에 세워져 있던 구조물이 얼마 전 철거되었다. 바닥도 고르게 정리 중이었다. 벌써 세운상가와 청계·대림상가 구간을 잇는 오래된 보행 데크를 정비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하고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때와는 달라지겠지만, 도심을 나누는 덩어리가 아니라 도시를 잇는 선이 되어주면 좋겠다.
걷기 좋은 거리가 되어, 돈 벌리는 거리가 되어도 지금 상가에서 오랜 삶을 살아온 상인들이 그대로 머무르면 좋겠다.
그리고, 작지만 깊이 있는 책방 <200/20>도 이 자릴 지키길 바라본다.
글/사진 구선아 · 일러스트 이예연
기획/제작 퍼니플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