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반항아' 키우는 대안학교...책방 풀무질과 나 #6
건강한 '반항아' 키우는 대안학교...책방 풀무질과 나 #6
작은 책방 지키기 25년! 도서출판 '한티재'가 동네서점 포스트에 1년간 연재해 온 성균관대학교 앞 ‘책방 풀무질’ 책방지기 은종복의 오래되고 따뜻한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펴냈다. #동네서점브릿지
오늘은 내 아이가 대안 교육하는 배움터에 다니게 된 일에 대해 쓰려고 한다. 아이가 커서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내가 책방을 하고 있으니 아예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놀면서 아이 스스로 배움 길을 찾기를 바랐다.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책방을 하다 보니 지금 대학의 현실을 더욱 잘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97년 11월 4일, 내 아들 은형근이 태어났다.
내가 책방 풀무질은 꾸린지 4년 6개월 만이다. 아들은 내가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판매죄로 감옥에 갇혔다가 나온 그해에 태어났다. 아내는 요가를 해서 아이를 낳더니 이렇게 쉬우면 하나 더 낳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아이 낳기가 어떻게 그리 쉽겠는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인 동화작가였던 권정생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을 때 심한 아픔이 따른다. 그러나 아기를 낳으려면 그런 아픔을 참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해방이 된 뒤로 미국에 빌붙어서 살아왔다. 이제는 미국 없이 사는 꿈을 꾸어야 한다. 그 고통이 어머니가 아기를 낳는 아픔보다 더 크더라도 한 번은 꼭 겪어야 할 일이다.”
삼각산재미난학교에서는 배우고 싶은 것을 스스로 짜서 서로 도와가며 재미나게 공부를 한다.© 책방 풀무질
대학이란 곳은 두 가지 일을 하는 곳이다.
하나는 지금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연구해야 한다. 또 하나는 지금 사회가 가는 길을 비판하고, 그 사회가 올곧게 걸어가도록 현실 참여를 해야 한다. 다른 나라 말을 쓰는 것을 싫어하지만, 앞엣것은 대학의 학문적인 기능이고, 뒤엣것은 대학의 앙가주망(engagement) 기능이다.
그런데, 지금 대학은 어떤가.
기업이나 국가가 바라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 돼버렸다. 아니 학생들은 기업에 들어가려고 영혼까지도 팔려 한다. 교수들은 그것을 부추기며 가르친다. 대학교육은 가난한 사람들을 억누르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살 수 없고, 자연을 더럽히더라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용서하는 일에 발 벗고 나선다.
모든 대학생이 그런 마음으로 대학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학을 들어가면 그런 시스템에 끼여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나는 내 아이를 그런 교육을 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커서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었다.
내가 책방을 하고 있으니 아예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놀면서 아이 스스로 배움 길을 찾기를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수유리 우이동에 대안초등과정인 삼각산재미난학교가 문을 열었다. 나와 아내는 그곳에 딱 한 번 가보고 그곳에 보내기로 했다. 작고 허름한 2층 집을 얻어서 열 댓 명 남짓한 아이들이 배움터를 가졌다. 그곳에는 산과 들, 냇가가 가까이 있었다.
삼각산재미난학교 앞뒤로 실개천과 산이 있다. 그곳은 아이들 놀이터도 되고 텃밭도 된다. © 책방 풀무질
그곳에서는 영어나 수학을 억지로 배우지 않아도 되었다.
먹을거리를 만드는 모둠과 뭔가를 만드는 모둠으로 나뉘어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함께 배웠다. 아이는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공부를 많이 했다. 아이들끼리 다투거나 마음 다치는 일이 있으면 모둠을 해서 스스로 답을 찾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다른 이 마음을 잘 읽는 공부가 저절로 된다. 사실 사람이 살면서 다른 이 마음을 잘 읽는 것만큼 중요한 공부가 어디 있겠는가. 내 아들 형근이는 아내와 내가 다툴 때 가운데서 말을 해서 화해하게 만든다. 내 아들은 내 선생이다.
제천간디학교는 산골 깊숙한 곳에 있어 아이들 마음에 평화 생명 씨앗이 자라게 한다. © 책방 풀무질
형근이는 삼각산재미난학교를 마치고 제천간디학교에 들어갔다.
중고등 6년 과정이다. 간디학교는 아이 스스로 가고 싶어 했다. 일반 중학교도 갈 수 있었지만 딱딱한 교육과정을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물론 일반 학교에 가면 아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학생들이 많았겠지만 지금 일반 학교는 축구도 교과과정이라는 것을 안 아이는 가려고 하지 않았다.
제천간디학교에 들어가서는 날마다 축구를 했다. 다른 대안학교보다 학생들도 많았다. 학년마다 20명쯤 되니 모두 모이면 120명이 넘었다. 제천간디학교는 잠 자는 곳과 밥 먹고 공부 하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다. 산에 있는 기숙사에서 15분쯤 걸어 내려와야 밥을 먹을 수 있다. 밥을 먹거나 수업 마치고 걷는 길에서 자연스럽게 시골에 사는 나무, 풀, 꽃, 바람, 별, 달과 하늘을 보게 된다.
제천간디학교 봄 대동제에는 학생, 선생님, 학부모,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 마을잔치다. © 책방 풀무질
아이가 제천간디학교 2학년 때, '봄 대동제'를 보러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아이들 서넛이 보였다. 아이들은 길옆 풀밭에 옹기종기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니 형근이도 있었다. 찻길에 치여서 죽어가는 새를 살포시 안아서 무덤을 만들어 주고 나무 십자가를 만들고 있었다. 도시아이들이었다면, 일반 학교에 다녔다면 그런 일은 있지 않았으리라.
나는 아이가 제천간디학교에서 입학식을 하는 날 말했다.
“나는 아이가 도시에서 상처받았던 마음을 이곳 아이들에게서 치료 받거나, 이곳 선생님들에게 치료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이곳 제천에서 만나는 자연으로 마음에 평화를 얻으리라 믿는다. 이곳에 부는 바람과,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과, 산을 붉게 물들이는 해와, 겨울을 더욱 스산하게 하는 달빛을 받으며 저절로 아름다운 본성을 찾으리라.”
지금은 지식순환협동조합에서 꾸리는 대안대학을 다닌다.
아이는 마르크스, 푸코, 데카르트, 마키아벨리, 정희진 글들을 읽으며 생태 평화 인권 나눔 평등을 배운다. 한 번도 일반 학교를 다니지 않아 낯선 글들이 어렵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가치들을 몸으로 배웠기에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한다.
여전히 전자오락도 좋아하고 술과 담배도 즐기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대안학교를 다닐 때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경남 밀양 송전탑, 진도 팽목항 세월호를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국가폭력으로 아픔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 속에서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힘이 자랐기 때문이다.
지식순환 협동조합에서 꾸리는 책들은 어렵고 낯설다. 몸으로 겪은 형근이는 즐겁게 배우고 있다. © 책방 풀무질
나는 아이와 지난 몇 달 동안 광화문 네거리에서 촛불을 함께 들면서 민주주의를 외쳐서 참 좋았다. 이름난 대학을 가려고 아이가 학습 공부에만 매달렸다면 그런 기쁨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물론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은 촛불이 꺼지면 다시 기업과 국가에서 바라는 사람이 되려고 책상에 머리를 숙이고 공부해야 한다.
참 슬프게도 그런 공부가 자신을 노예로 만들고 있다.
이름난 대학에 다니는 많은 학생이 고시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그들이 시험에 붙어서 만든 세상은 어떤가. 자연은 더욱 더러워지고 마을 공동체는 깨지고 사람들 사이는 더욱 멀어졌다. 이젠 이런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대안 교육만이 희망은 아니다. 하지만 잘못된 질서에 누군가는 ‘아니요’라고 말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질서를 파괴하는 '문제아'를 보고 싶다. 건강한 '반항아'는 혁명가다.
2017년 5월 31일 서울 강북 수유리 밤이 아름다운 날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풀무질 (Pulmuzil)
사회인문과학서점 | 성균관대 앞에서 사회과학서점의 명맥을 튼튼히 잇고 있는 서점이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풀무질놀이터'와 '풀빵', '한평장터'가 함께 있다.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책을 둘러볼 수 있으며 '풀빵'이라 불리는 서점 안의 작은 공간에선 다양한 모임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Mon-Fri 09:00-22:00, Sat-Sun 12:00-21:00 (추석/설 명절연휴 휴무) | 02-745-8891 / 010-4311-6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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