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3 | 홍대 앞 잔다리길의 동네서점 여행지도 -1/2

동네3 | 홍대 앞 잔다리길의 동네서점 여행지도 -1/2
책방으로 떠나는 도시 속 착한 여행, 「여행자의 동네서점」
여행자의 시선으로 동네서점이라는 작은 점과 점을 6개의 선으로 엮어 서울의 동네서점 여행 코스를 만들었습니다. 서점은 도시 여행자의 팍팍한 삶에 휴식과 영감을 주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후원금은 「여행자의 동네서점」 지도와 책자 제작에 쓰입니다.
이 6개의 선은 책·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6일간의 여행 코스로서뿐 아니라, 데이트 코스와 휴일 산책길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친구/연인과 함께 책방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
예전 이곳엔 두 개의 작은 다리가 있었다.
서교예술실험센터 근처에 하나, 망원동 길과 동교동 길 사이의 복개도로 오른쪽에 하나 있었다고 한다. 서쪽 잔다리가 있어서 서교동, 동쪽 잔다리가 있어 동교동 이렇게 두 동네를 구분해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 잔다리 길은 홍대 앞에서 양화로로 이어지는 길로 서교동 와우산길에서 성산동 망원동 길에 이르는 폭 20미터, 길이 1,350미터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1980년대만 해도 잔다리 길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처럼 유행을 끄는 상점은커녕 인적이 드문 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잔다리 길은 피카소거리와 겹쳐지고, 상상마당에 이르기까지 이국적인 카페, 바, 상업적인 시설들이 화려하게 수 놓인 거리로 자리 잡았다.
잔다리 길의 동네서점 여행 지도 ⓒFunnyplan
북새통문고 Booksaetong
만화서점이라는 신세계
서울에 살면서 홍대 거리에 와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이미, 해외 여행객들에게 서울 여행의 필수 코스 중 하나가 된 곳이기도 하다. 나도 참 많이 홍대 거리를 드나들었다. 하지만, 홍대입구역주변에 이렇게 많은 서점이 밀집해 있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하철 입·출구와 연결된 여행서점 <짐프리>를 비롯해 만화 전문서점 <북새통문고>와 <한양툰크>, 디자인 전문서점 <아이디앤북>과 30년 넘게 홍대 앞을 지키고 있는 <온고당>, 잔다리 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잡지전문 서점 <매거진랜드>와 갤러리가 있는 <땡스북스> 등 서울에서 가장 많은 동네서점이 밀집해 있다.
북새통문고 내려가는 계단
오늘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점을 여행하기로 했다.
홍대입구역에 도착해 지하철 역사에서 가까운 만화 전문서점 <북새통문고>로 향했다. 파란색 간판이 큰길가에서도 또렷이 보이는 곳이다. 간판 아래로 한 사람이 내려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계단이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양 벽면에 붙은 만화 포스터가 서점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듯 했다.
만화책이 빼곡히 꽂힌 북새통 문고의 서가
서점 문을 열자마자 예상치 못한 큰 규모에 놀랐다.
만화 전문서점이라 해서 막연히 학창시절 드나들던 만화방이나 책 대여점 크기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직접 보니 대형서점 못지않아 놀랐다.
<북새통문고>는 건물의 지하 1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계산대를 중심으로 열 개의 종 통로와 두 개의 횡 통로가 있을 만큼 컸다. 큰 규모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 빽빽이 꽂혀있어 압도당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기둥과 책장마다 알파벳과 주요 출판사별로 책이 분류되어 있었고, 만화책과 그림책 외에 에세이, 웹툰, 그래픽 노블, 사진집, 컬러링북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텍스트보다 그림이 주가 되는 세상의 모든 책이 이 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걱정도 잠시.
동네서점에선 본 적 없는 ‘검색대’가 떡 하니 있는 게 아닌가.
여기, 어마어마한 곳이다.
바닥에 쌓여 있는 새로 들어온 만화책들
아지트 같은 <북새통문고>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매월 발행되는 만화잡지 「챔프」와 「점프」를 받아 보는 게 큰 낙이었다. 그중 '슬램덩크'나 '드래곤볼', '란마 1/2'은 단행본을 수집하기 위해 열심히 용돈을 모았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만화책을 즐겨보기 시작했다.
매일 새로운 만화책을 빌려 학교에서 선생님 눈을 피해 친구들과 돌려보는 맛이 여간 달콤한 게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면 당연히 만화책 대여점으로 향했다. 마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과 같았다.
책방에 들려 만화책을 반납하고 대여하는 시간조차도 즐거웠던 기억이다.
<북새통문고> 서가엔 학창시절 보았던 만화책들도 간간이 꽂혀있고, 그 시절이라면 몽땅 사버렸을 만한 책도 한가득이었다. 오랜만에 만화 책방에 와서 그때 그 시절 감성이 되살아난 것 같았다. 서점엔 한창 만화책 좋아할만한 교복 입은 학생과 앳된 얼굴이 많았지만 삼, 사십대로 보이는 사람도 간혹 보였다.
책과 같이 MD상품과 피규어도 판매하고 있는 북새통문고
<북새통문고>은 어마어마한 양의 책 뿐만아니라, 관련 퍼즐과 피규어와 문구도 판매하고 있었다. 마니아라면 책만으로 부족한 것은 당연, 책을 사며 부록처럼 살만한 상품들도 책장 사이사이, 기둥 사이사이에 놓여 누군가의 지갑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양툰크 Hanyangtoonk
뽑기의 추억
<북새통문고>와 마주하고 있는 <한양툰크>로 걸음을 옮겼다. 길 하나를 건너 비스듬히 꺾어진 골목 방향으로 커다란 <한양툰크> 간판이 보인다.
<한양툰크> 입구와 뽑기 기계
제일 먼저 날 반긴 건 문 밖에 나란히 서 있는 뽑기 기계였다.
월간 만화잡지를 기다리던 초등학생 때보다 더 어린 코흘리개 시절, 백 원짜리 뽑기 하나면 마냥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갖고 싶은 무엇이 나올 때까지 백 원, 이백 원, 삼백 원을 넣었다. 드르륵 태엽이 돌아가고, 철커덕 뚜껑이 열리며, 데구루루 동그란 뽑기 알이 나올 때면 얼마나 설렜던지.
동전 쓸 일이 없는 요즘, 지갑에 잠자던 동전을 꺼내 제일 마음에 드는 캐릭터 뽑기 기계 앞에 섰다.
제발, 제발, 제발.
그때나 지금이나 기다리는 마음은 똑같았다. 원하는 게 나올 확률도 같았던 걸까. 역시나 갖고 싶은 캐릭터는 한 번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쭈그리고 앉아 뽑기 기계 속을 들여다보고, 동전을 넣고, 태엽 소리를 듣는 건 그 시절 보다 설레었다.
<한양툰크> 입구서 바라본 서점 내부
<한양툰크>의 전면 유리창엔 빛 한줄기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만화책 포스터와 책 관련 행사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활짝 열린 문을 들어서니 <북새통문고> 보다는 조금 작아 보였지만, 책의 양은 그에 견주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사방이 바닥부터 천정까지 레일 달린 이중 책장으로 되어 있고, 손가락 들어갈 틈도 없이 빼곡하게 책들이 꽂혀있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한양툰크> 서가
책장은 순정만화, 청소년 만화, 성인만화 등으로 구분되어 있고, 다시 출판사와 시리즈별로 분류되어 있었다. 책장 외에도 열 개가 넘는 매대에 책이 드높이 쌓여있는데 매대에는 만화책 외에 잡지, 에세이, 그림책은 물론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베스트셀러 소설이나 수필집도 보였다.
윤태호의 ‘미생’, 순끼의 ‘치즈 인 더 트랩’ 같이 드라마로 제작되며 이슈화된 웹툰도 많았다. 특히 최근 화제의 웹툰과 그래픽 노블을 입구 쪽에 따로 모아두어 찾기 쉬워 좋았다. 책의 얼굴이 보이게 진열되어 있어서, 관심없던 책도 흥미가 생겨 들춰 보기 좋게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하 1층에는 원서들이 가득했다. 캐릭터 상품부터 최대 보유량을 자랑하는 일본 원서 코믹스와 유럽만화, 대형 화보집까지, 마치 보물창고 같았다. 책의 얼굴이 드러나 있어 1층 보다 알록달록한 느낌이었고, 책들이 조금 더 여유롭게 진열되어 있었다.
시리즈별 만화가 놓인 책 테이블과 책장
추억을 부르는 만화서점
만화서점 두 곳을 둘러보는 동안, 잊고 있던 추억이 자연스레 되살아났다. 되돌아보면 웃음 짓게 하는 시간이지만, 쉽게 잊고 살아왔던 시간이기도 하다.
어느 노랫말 가사처럼 "많은 것을 잊고 살아"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기 위해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돌이켜보니 꽤 오랜 시간 이렇게 잊고 살아온 듯싶어 씁쓸했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혜화동》, 동물원
그때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지금은 만화책보다 다른 책들을 즐기고 좋아하지만. 그때는 어려서, 지금은 어른이라서 달라진 건 아니다.
가끔 생각한다.
사실 성장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대신 위장술을 익혀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욕망을 숨기고, 유치함을 숨기고, 정상적인 어른이 되었다고.
약간의 매너로 모두가 모두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익숙한 새벽 세시》, 오지은
책보다 더 값진 시간을 내게 준 만화서점 두 곳.
아, 역시 여행의 거리와 여행에서 얻는 통찰은 비례하지 않나는가 보다.
아이디앤북 IDNbook
디자이너들이여 오라
<한양툰크>에서 1분 거리에 또 다른 전문서점이 자리하고 있다. 만화서점은 아니지만, 이곳 역시 시각 중심의 책을 판매한다. 바로 해외출판물서점 <아이디앤북>이다.
<아이디앤북>은 온라인에 정보가 많이 검색되지 않아 여행을 망설였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인장이 건축 디자이너 출신이라고 해서 꼭 와보고 싶던 서점이었다.
<아이디앤북>은 단골들이 꽤 있는 디자인·패션, 건축·인테리어, 미술·사진 책을 주로 판매하는 서점이다.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든 희귀한 책과 해외 직수입 잡지, 과월 호를 이 서점에서는 찾을 수 있다. 또 해외 책 수입 대행은 물론 해외 잡지의 정기구독도 대행한다.
<아이디앤북> 입구
서점은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디자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샀을법한 'Wallpaper'와 ‘Ideal Home', 'HOMES&GARDENS', 'ESPRIT' 등 과월 호 잡지가 테이블과 스탠드 책꽂이에서 색 바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입구로 들어서니 감각적인 표지의 물 건너온 잡지들이 한가득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domus'와 'GRAFIK', 'arts‘가 전면에 비치되어 있어 누군가에게 취향을 들킨 기분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지만 서점 내부는 참 알차게 여러 집기를 활용해 다양한 구획으로 나누어 부족하지 않을 만큼 많은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책의 얼굴이 잘 드러나게 진열된 해외 잡지들
표지나 디자인이 책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분야의 책들이기에 최대한 책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찌 보면, 건축 디자이너 출신 주인장이라서 당연한 책 디스플레이 방식이었다. 바닥부터 천정까지 이중으로 삼중으로 겹겹이 세워져 예쁘게 놓여진 책들이 욕심이 났다.
희귀하고 고가의 책이 많다 보니 과월 호를 뺀 모든 책이 비닐로 쌓여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 없어 아쉬웠다. 하지만, 주인장에게 말하면 책 속을 살펴볼 수도 있으니 이점 염두 해 두자.
해외 잡지, 단행본, 작품집, 사진집까지 다양한 해외 서적이 있는 <아이디앤북>
이곳엔 아이디어가 있다
건축과 미술을 공부하던 꿈 많고 욕심 많던 대학시절, 책 아저씨가 한 달에 한 번 학교로 방문했다. 책 아저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참으로 열심히 오셨다. 수 십 권의 무거운 건축과 디자인 책을 작은 손 끌개에 짊어지고 가져온 책들은 대부분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었다.
책 아저씨의 현란한 말솜씨에 홀딱 넘어가 당시 오십만 원이 넘는 해외 현대건축가 작품집 세트를 덜컥 구매했더랬다. 지금도 사고 싶다고 고민 없이 살만한 가격은 아니다. 그런데 십수 년 전 대학생 시절이었으니. 사고 나서 오랫동안 후회로 끙끙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요즘 대학생들은 작품 과제나 리포트를 쓸 때 네이버나 구글 검색으로 자료를 수집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은커녕 인터넷도 자유롭지 않던 그 시절엔, 해외 출판물이 가장 트랜디하고 희소성있는 정보를 얻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갖고 싶은 책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모습
견물생심이라고 눈으로 직접 보니 갖고 싶은 책이 한두 권이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책을 소유하면 책 속 지식이 내 것이 될 것 같은 기분은 그대로였다.
‘HOUSE LANDSCAPE’, ‘MUSEUM DESIGN’, ‘JAPAN HOUSE’...
이제는 책을 소유하는 것으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가격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소유로 인해 져야하는 책임의 무게도 잘 알고 있다.
※ 이 연재글의 2/2쪽은 다음 주 월요일에 공개됩니다.
글/사진 구선아 · 일러스트 이예연
기획/제작 퍼니플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