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루탄 냄새 사라진 성대 정문 앞에서...책방 풀무질과 나 #9

최루탄 냄새 사라진 성대 정문 앞에서...책방 풀무질과 나 #9
김대중 정부 이전엔 안기부에서 책방 풀무질에서 파는 책을 감시하러 왔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을 때 손님으로 왔던 여학생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비판의 눈길을 멈출 수 없다. 작은 책방 지키기 25년! 도서출판 '한티재'가 동네서점 포스트에 1년간 연재해 온 성균관대학교 앞 ‘책방 풀무질’ 책방지기 은종복의 오래되고 따뜻한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펴냈다. #동네서점브릿지
책방 풀무질 앞은 시위대와 전투경찰이 마지막으로 대치하는 곳이었다. © 책방 풀무질
책방 풀무질이 성균관대학교 정문 앞에 있었을 때 얘기다.
책방 앞은 데모하면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지키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밀리면 성대 정문까지 밀린다. 김대중이 집권하기 앞선 김영삼 정권까지는 학교 앞에는 폭력시위가 있었다. 돌멩이를 던지고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경찰들은 최루탄을 쏘면서 시위대를 잡아들였다.
나는 시위가 있으면 책방 일을 멈추고 시위대에 섞였다. 도로에 물을 뿌리다가 학생들 틈에 끼여서 돌을 던지기도 했다. 내가 꾸리는 책방 옆에 있는 가게들은 시위가 있으면 내게 와서 언제쯤 최루탄을 쏘겠냐고 물었다. 그럼 나는 말한다.
"아직 괜찮아요. 앞으로 1시간은 저렇게 대치하고 있을 거예요."
"지금 셔터를 내리세요. 서둘러요. 5분 내로 전투경찰이 최루탄을 쏠 거예요."
최루탄을 쏘며 시위를 막기 시작하면 어차피 장사할 수 없으니 사람들은 가게 문을 닫았다. 나는 그렇게 동네 사람들에게 언제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지 알려 주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나는 학생들이 책방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살짝 문을 열어 놓았다. 책방 풀무질 2층은 매운 최루가스를 피해서 몸을 숨기기 좋았다.
안기부 요원이 책방 풀무질에서 파는 책을 감시했다. © 책방 풀무질
책방 풀무질과 나는 이렇게 시대 상황과 아주 가깝게 움직였다.
내가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꾸리기 때문이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까지 이어지던 최루탄 사용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 딱 끊겼다. 그것만이 아니다. 책방을 사찰하는 정보원도 뜸해졌다. 책방 풀무질에는 정보원들이 일주일이 멀다 하고 드나들었다. 국가안전기획부, 국군기무사령부, 경찰청, 동대문경찰서 요원들이 제집 드나들 듯이 책방에 와서 정부를 비판하는 잡지나 책들을 사 갔다.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은 양복을 깔끔하게 입고 명함을 주면서 앞으로 잘 해 보자고 했다. 명함에는 국가안전기획부가 아니라 무슨 상사라고 쓰여 있었다. 참 웃기는 일이다. 내가 그들 조직원도 아니고 뭘 잘 해보자는 건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정보원들은 한 철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다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발길을 딱 끊었다.
내가 누가 정보원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궁금할 것이다. 그들은 책방에 들어오면 책방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핀다. 그들이 생각하는 불온한 책이나 비정기간행물이 있는지 눈여겨본다. 언제나 점심 식사 때 지나서 오고 한 사람이 들어오고 그가 나가면 다시 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들이 모두 나가고 책방에서 살펴보면 같은 승용차를 타고 간다. 그들은 냄새가 난다. 학생들은 책을 서둘러 사가거나 찾는 책이 안 보이면 물어보는데 그들은 그렇지 않다.
한가지 놀라운 일도 있었다. 학생인 것처럼 속여서 정부 비판 자료집을 사가기도 했다. 나중에 내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을 때 내 손으로 써 준 영수증이 한 다 발 있었고 그곳에 있는 젊은 여자를 보고 놀랐다. 내가 꾸리는 책방에서 반정부 자료집을 사 갔던 여학생들이 그곳에서 버젓이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경찰 끄나풀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국민 반대에도 이라크에 총을 든 군인을 보냈다. © 책방 풀무질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정보원이 거의 오지 않았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에서는 집권하자마자 구제금융사태가 터졌다. 일명 IMF(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 사람들은 집에 있는 금을 모아다가 나라에 거저 주었다. 그렇게 수렁에 빠진 나라를 구하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노동자 농사꾼 도시 빈민들은 더욱 살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 대한민국의 IMF 구제금융 요청(1997년 12월 3일 ~ 2001년 8월 23일)은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IMF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게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국가 권력에 목숨을 잃고 명예를 잃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정의를 찾으려고 여러 개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렸다. 참으로 눈물 나도록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국가공기업을 사기업으로 만든 것이나 노동 유연화를 한다면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세상을 만든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제주에 해군기지를 만들기로 한 것이나 평택에 미군 기지를 만든 것,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것,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못한 것, 이라크에 군인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분을 참을 수 없다. 물론 제주 해군기지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마무리했지만, 그 계획을 세운 것은 노무현 정부다.
평택 대추리 도두리에 미군 기지를 만들려고 그곳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쫓아냈다. 중국과 가까운 곳에 전쟁 기지를 세워서 한반도는 더욱 위태로워졌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은 농사꾼들을 더욱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이라크에 총을 든 군인을 보냈다.
나는 이라크 아이들이 어른들 전쟁으로 죽는 것을 막으려고 밥을 굶었다. © 책방 풀무질
나는 2003년 겨울에 밥을 열흘 가까이 굶었다.
혜화역에서 동화작가 박기범이 이라크 파병 반대 단식을 한 달 가까이 이어질 때였다. 나도 함께 밥을 굶으며 그 뜻을 이었다. 내 아이가 여섯 살 때다.
“아빤 왜 밥을 굶는 거야?”
“응, 형근이한테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내 목숨이 귀하면 다른 이 목숨도 귀하다고 형근이한테 얘기했는데 우리나라 군인들이 이라크 나라 아이들을 죽이는 일에 반대해서 밥을 굶는 거야.”
나는 그때 몸무게가 57㎏이었는데 밥을 굶는 동안 하루에 1㎏씩 빠져 47㎏이 나갔다. 남들은 밥을 안 먹으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물만 먹으면서도 책방 일을 계속했다. 나중에는 책방 1층에서 2층으로 걸어갈 힘도 없었다. 어머니가 이것을 알고서 책방으로 달려왔다. 마구 울부짖으면서 당신도 밥을 굶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사흘 내리 밥을 굶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밥을 다시 먹었다.
많은 사람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그리워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을 만들어서 죄스러워한다. 나도 그렇다. 참 안타깝고 지켜주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하지만 실망과 분노도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삼 분의 이 가까이 되었을 때 왜 국가보안법을 없애지 못했는지 생각하면 화가 난다. 한반도 평화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드(THAAD) 기지를 이 땅에 세우려고 하는 것을 보면 다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있었던 악몽이 떠오른다.
지금 문재인 정부도 믿음이 더 앞서지만, 비판의 눈길을 멈출 수가 없는 이유다.
* 종말고고도지역방어(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 사드)는 미국 육군의 탄도탄 요격 유도탄 체계로, 단거리(SRBM), 준중거리(MRBM), 중거리(IRBM) 탄도유도탄을 종말 단계에서 직격 파괴로 요격하도록 설계되었다.
2017년 9월 3일 일요일 아침 햇살 좋은 날에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 사진 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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