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서적과의 전쟁... 책방 풀무질과 나 #5
불온서적과의 전쟁... 책방 풀무질과 나 #5
작은 책방 지키기 25년! 도서출판 '한티재'가 동네서점 포스트에 1년간 연재해 온 성균관대학교 앞 ‘책방 풀무질’ 책방지기 은종복의 오래되고 따뜻한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펴냈다. #동네서점브릿지
나는 책방 풀무질에서 일하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1997년 4월 15일 낮 12시 30분쯤의 일이다. 그곳은 1987년 1월에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끌려가서 물고문으로 죽임을 당했던 곳이다. 그해 6월엔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시위하다 전투경찰이 쏜 직격 최루탄으로 맞고 죽었다. 그 사건들은 6월 항쟁과 7, 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지는 불씨가 됐다.
'풀빵'이라 불리는 서점 안의 작은 공간에선 다양한 모임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 책방 풀무질
아침 9시, 나는 여느 날처럼 책방 문을 열었다.
2층에선 나를 돕던 아버지가 아침밥을 드시고 있었다. 나는 1층에서 책을 정리하고 있는데 얼굴이 굳은 사람 예닐곱이 책방에 들어오더니 긴급구속 영장을 보여주었다.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판매죄로 나를 체포한다고 했다.
책방 셔터를 내렸다. 뒷문으로 들어와있던 성균관대 여학생에게 내가 지금 어딘지도 모르게 잡혀가니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경찰차에 짐짝처럼 실려 갔다. 부모님은 이틀이 지나서야 내가 잡혀 온 곳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은 며칠 동안 경찰 눈을 피해 다녀야 했다.
아내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용산경찰서로, 서울구치소로 나를 만나러 왔다. 아내는 배 속에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내가 잡혀간 날 4월 15일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날이다. 태양절이라고 북쪽에서 아주 큰 명절이다. 하필이면 그날을 골랐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대학 다닐 때 그렇게 데모를 많이 했어도 서울구치소에 갇히진 않았는데, 책을 팔았다고 감옥에 가야 하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01.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죽은 곳. 남영동 대공분실. 나도 그 옆방에 끌려갔다.
그러고나서 한 달 동안 서울구치소에 있어야했다.
내가 잡혀간 그날 내가 꾸리는 책방 풀무질 말고도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과 고려대 앞 '장백서원' 대표들이 같은 시각에 한꺼번에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나는 감옥을 나온 날도 정확히 기억한다. 음력 4월 8일 양력 5월 15일 석가탄신일 다음 날이다.
김영삼은 또 한 번 정권을 잡으려고 공안바람을 일으켰다. 그 첫 번째가 대학 앞 인문사회과학 책방들이었다. 그 뒤로 고영복 고정간첩사건, 총풍사건 같은 예닐곱 개 조작된 조직사건으로 공안바람을 일으켰지만, 그해 말 대통령 선거에선 김종필과 손 잡은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뽑혔다.
나를 조사했던 검사가 말했다.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았다. 서울대 공법학과 83학번. 언제나 검사실에서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지냈다.
02. 서울구치소에서 한 달을 갇혔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도 함께 갇혔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 번은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내가 저녁 7시쯤 검사실 계장에게 조사를 받고 있는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혼자 살려고 이런 줄 알아. 집구석에 처박혀 있으니 한가하지.” 하면서 그다음에는 입에 못 담을 말을 퍼부었다. 그 자리에는 나도 있고 계장, 여자 비서도 있었지만, 그는 자기 아내에게 그런 쌍욕을 했다.
그 일은 그 뒤로도 한두 번 더 있었다. 그리고 어떤 날은 그와 반대로 허리를 여신 굽히며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전화를 받는 일도 있었다. 바로 공안부장에게 온 전화를 받을 때다. 전화를 받자마자 '네, 네' 말을 하면서 한 손으로 넥타이를 고쳐 매며 허리를 반쯤 꺾고 말을 하다가 전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공안부장실로 뛰어갔다.
나를 감옥에 가둔 것은 공안기관에서 말하는 이적표현물을 팔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적표현물 물품을 보니 〈전태일 평전〉, 〈월간 말〉지 같은 시내 대형서점에서도 버젓이 팔고 있었다.
수사관은 이렇게 말하면서 내가 책방 풀무질에 드나드는 성균관대 진보 학생들 동향을 알려 주면 달마다 돈을 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나를 국제사회주의자 조직원으로 몰려 했다.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수사관은 윽박질렀다.
“야, 이 새끼야, 여기야 어딘 줄 알지. 박종철이 죽은 곳이야. 너 같은 놈은 죽어도 아무도 몰라. 순순히 자백하면 금방 나갈 수 있으니까 서로 피곤하게 하지 말자. 나도 밤에 잠도 못 자고 이 짓을 하려니 미치겠다. 그리고 니들은 한반도가 통일돼야 한다고 하는데 지금 남쪽에 '고첩'이 몇 명이나 있는 줄 알아. 이 새끼가 '고첩'을 몰라. 고정간첩 말이야. 지금 남한에 고정간첩이 4만 명이 넘어. 만약 통일돼서 그것들이 활개 치고 다녀 봐. 지금 우리 인력으로 그것들 잡으려고 하다간 한 달에 한 번도 집에 못 들어가 새끼야. 어디서 통일이고 나발이고 지랄이야.”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인문사회과학 책방 일꾼을 잡아 조사하려면 그 사람 수준에 맞는 경찰을 불러 놓아야지 참 한심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조사관이 나서서 윽박지르고 협박으로 사람을 다루니 누가 정보기관을 믿겠는가. 그런 정부기관은 국가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올곧게 살려는 백성들을 탄압하고 더러운 정권을 지켜주는 정권 안전기구일 뿐이다.
나를 조사했던 검사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나보고 초등학교 때부터 읽었던 책들을 중심으로 글로 쓰라고 했다. 나는 아침부터 저녁 해거름까지 검사실 한 귀퉁이에서 꼼짝없이 앉아서 16절지 10장 가까이 글을 썼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괜찮았지만 내 속을 다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04. 내가 읽었던 책들을 나를 취소했던 검사는 알지 못했다. 사법시험에는 그런 고전들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나서 참 웃긴 일이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몽테뉴의 수상록〉, 파스칼의 〈팡세〉, 괴테의 〈파우스트〉, 카프카의 〈유형지에서〉, 톨스토이의 〈참회록〉,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같은 책들을 읽었다고 썼더니 그는 아예 어떤 책은 책 이름과 글 쓴 사람 이름도 처음 들어봤다고 고백했다.
사법시험 공부를 하느라 교양 고전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눈높이에서 검사 일을 하기보단 오로지 그들이 말하는 불온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는 국가보안법 제7조에 따라 잡혔다.
그 조항에 보면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침해하는 정을 알면서 이적표현물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그 ‘정’ 자는 한자로 ‘뜻 정’이다. 그들은 내 마음속을 다 안다고 한다. 시내 대형서점은 단지 돈을 벌려고 하는 목적으로 책을 팔고 나는 그들이 말하는 한반도 북괴를 이롭게 하려는 사상을 전파하려고 책방을 한다는 것이다.
감옥에 한 달을 살다 나오니 책방 빚이 700만 원이 넘었고 아내는 아기를 가진 몸으로 서울구치소를 왔다 갔다 하느라 몸 마음이 모두 지쳐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와 사업하는 큰형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아야 했다.
나는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한 지금 당장에라도 또 철창에 갇힐 수 있다. 딱 20년 지난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해서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돋아난다.
2017년 5월 1일 월요일 127주년 세계노동절 날에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풀무질 (Pulmuzil)
사회인문과학서점 | 성균관대 앞에서 사회과학서점의 명맥을 튼튼히 잇고 있는 서점이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풀무질놀이터'와 '풀빵', '한평장터'가 함께 있다.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책을 둘러볼 수 있으며 '풀빵'이라 불리는 서점 안의 작은 공간에선 다양한 모임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Mon-Fri 09:00-22:00, Sat-Sun 12:00-21:00 (추석/설 명절연휴 휴무) | 02-745-8891 / 010-4311-6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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