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부평구ㅣ생각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하는, 사각공간

06 부평구ㅣ생각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여정을 함께하는, 사각공간
<인천책지도>가 책을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들의 친밀하고 든든한 동행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더욱 특별하니까요. #인천책지도
<인천책지도>는 인천광역시가 인천의 지역 서점 활성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산이 있어 오른다’는 말을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곁에 책이 있어 읽었고, 읽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특별한 계기나 의도는 없었지만, 어쩌면 이런 행보야말로 책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서점, 생각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여정을 함께하는 공간
기획은 한자로 企劃인데 이를 起劃으로 바꾸면 ‘획(劃)이 불러일으킨다(起)’는 의미로 새길 수 있습니다. 이를 독서라는 행위에 견주어 살펴보면, 사각(四覺)이라는 물리적 틀인 책장 속에 박제된 활자를 읽는 순간, 잠든 활자들이 비로소 생명력을 발해 진정 활자(活字)로 거듭나고 동시에 읽는 이의 마음 가운데 이미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미 사각(四覺)으로 완성되어 견고하다고 여겨지는 현실은, 생각(思)을 통해 깨달음(覺)에 이르면 얼마든지 가변적으로 바뀔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힘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여정에 함께하는 곳이 곧 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름을 사각공간(思覺空間)이라 짓게 되었습니다.
올해 4월에 개점한 후 관심을 보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동네 주민들의 관심은 제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제가 그 누구보다 놀랐습니다. 오가다 궁금해서 들어오는 분들과 인근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물론 도서관 독서 모임 회원 등이 책방을 찾아주십니다. 근처에 부평구청이 있고 서울과의 접근성도 좋은 편이라 젊은 사람들의 방문도 꾸준하고요. 전 연령대의 손님들이 찾아오십니다.
독자와 함께 하는 서점
간혹 이 서점의 특색은 무엇인지 묻는 분들이 계시지만, 달리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특색 없음이 특색이랄까요. 이미 여러 동네서점 주인장들이 나름의 역량과 시각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책을 전하기 위한 ‘큐레이션’을 하고 계시잖아요. 사실 독서량이 적은 저로서는 여러 책을 큐레이션 할 정도는 못 되고, 대신 독자 여러분의 안목을 존중하자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이 갖는 한계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고자 신간 위주로, 소량이지만 다양한 종류를 갖추는 것이 유일한 의도라면 의도입니다. 물론 판매로 이어져 자연스레 순환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아직 초기이기 때에 이어지지 않더라도 마음 쓰지 않고 있습니다.
책을 고를 때는 찾는 분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편 신구서적에 상관없이 ‘이런 책은 어떤가요’ 하고 물으며 조금씩 책의 양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제가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고,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찾아주시는 분들과 함께하다 보면 절로 자리를 잡을 거로 생각합니다. 저는 사각공간을 찾아주시는 분들을 믿습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안다
책 추천이란 참 어렵습니다. 다만 최첨단의 시대를 사는 만큼 역으로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들을 다시 꺼내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와 같은 책을 말입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1과 법고창신(法古創新)2의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
2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음
요즘 ‘힐링’, ‘위로’, ‘미니멀리즘’과 같은 키워드를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성장주도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통받는 개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더불어 무엇이든 취하려고 하는 소유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힐링과 위로, 갈등과 욕심이라는 대척점에 놓인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데, 이런 저자의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습니다. 또 직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기까지 하니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더 나아가, 법정 스님의 <무소유>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혜능 스님의 말씀을 정리해 담은 <육조단경> 등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멀미를 유발하는 세상 가운데에서 묵직한 자기중심의 닻을 내려 단단히 중심을 잡도록 돕는 책들이니 한 번쯤 살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불경에는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3, 여시아문(如是我聞)4이라 적혀있고, 또 논어에는 술이부작(述而不作)5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이런저런 말을 붙여 보았자 사족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로 책의 내용을 발췌해 손님들에게 소개합니다. ‘이 책은 이러한 내용을 품고 있어요’ 정도일까요. 당장은 책을 가까이하지 않더라도 눈 밝은 분이 적지 않으니, 책이 품은 글을 접하면 절로 독자가 되실 거로 생각하면서요. 이 책의 문구가 저 책의 행간을 넘고, 서로 연결되어 길이 되는 모습을 경험하면 ‘책 속에 길이 있다’는 표현은 더 이상 은유로 남지 않습니다.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길이 머릿속에서 생생한 지도로 구현될 때,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책과 바깥 현실 사이의 경계를 지우며 나아가는 제 모습을 마주할 때의 쾌감. 이건 어떻게 말로 표현이 어렵겠네요. 모쪼록 모두가 직접 경험해 보시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3 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말이나 글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
4 부처에게서 들은 교법(敎法)을 그대로 믿고 따르며 적는다는 뜻
5 성인(聖人)의 말을 전하고 자기의 말을 지어내지 않음을 이르는 말
저 또한 아직 책에 대해서는 초심자이지만, 그래도 책 읽을 때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한 가지 제안하고 싶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어떤 부분에서 연상되는 다른 책의 구절이 있다면 그 문장 을 발췌해 손편지 형태로 책 사이에 끼워두면 어떨까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책을 많이 알아야 할 테니, 저부터 부지런히 읽어야겠네요.
공부, 자기 속에 쉴 공간을 마련하는 데 힘쓰는 건축 노동자가 되기
독서가 곧 공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스스로가 마치 건축 노동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으면서 자기 내면을 다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건설 현장에서 자재를 실어 나르고, 그 자재를 쌓아 올려 건물이 형체를 갖추듯, 책을 읽어 나가며 내면에 쌓은 공간이 튼튼할수록 세상의 파도 속에서도 잘 견딜 수 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한다’든지, ‘하자’는 표현은 어쩌면 ‘내가 공부(工夫)다. 공부(工夫)되자!’로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육체와 정신, 어느 한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진정한 노동의 조화. 이것이 공부하는 이의 참된 상이 아닌가 합니다.
책과 사람이 가까워질 수 있는 곳, 이를 통해 사람과 사람 간 서로에게 조금 더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 사각공간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꼭 저희 책방에서 책을 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마다 이미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것들을 나눌 수 있는 계기, 이를 마련해주는 책이 잘 전해지도록 돕는 것. 서점으로서 사각공간의 소임이라 생각합니다.
부평구 책지도
2018년 9월, 인천 동네서점과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에서 인천책지도를 무료로 만나보세요.
아래 웹사이트에서 '인천책지도'를 검색하시면 온라인으로도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imap.incheon.go.kr
www.bookshopmap.com
2018 인천책지도 가이드북&포스터
Incheon Book Map ⓒ 2018 Incheon
인천책지도 포스터와 가이드북은 인천의 동네서점과 공공도서관, 작은도서관 지도와 색인을 수록했습니다. 인천광역시가 창작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